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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 사도신경 재번역
administrator  (Homepage) 2009-11-27 23:27:12, 조회 : 710, 추천 : 35

주기도, 사도신경 재번역


한기총과 KNCC가 공동으로 참여한 주기도문·사도신경 재번역안이 완성됐다. 이번 사업에는 한기총과 KNCC 산하 신학자 60여명이 참석, 각 교단 신학이 견지하는 공통분모를 토대로 재번역 원칙을 세우고 연구를 진행했다.

주기도문 재번역 원칙을 △예배용으로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 마태복음 본문의 주기도문을 번역한다. △연합성서공회(UBS)가 출판한 헬라어 성경(3판)의 난하주에 있는 송영도 본문으로 간주하고 번역한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하되 기도문이므로 현대 문어체로 정중한 표현을 하기로 한다 등의 세가지로 정하고 연구에 임했다.

사도신경은 △750년 공인된 원문 (Forma Recepta)을 기본삼고 번역한다. △원문에 충실하되 항목별 개별성을 존중한다. △신학적 검증도 함께 한다. △오늘에 사용하는 언어 표현을 따른다. △결정시 이견이 있을 경우 기도후 다수결로 정한다 5가지를 기본원칙으로 정했다.

주기도문 새 번역에 대한 해설

①‘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호격이므로 ‘아버지여’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아버지와의 친밀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를 붙이지 않는다.

②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는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라야 원문에 맞는 번역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당신’이라고 부를 경우 우리말의 정서상 적절하지 않으므로 2인칭 대명사로 대치하여 ‘아버지의’로 번역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드리던 주기도문에서는 이 부분 이 생략되어 있으나 원문에서는 ‘당신의’가 세 번씩이나 반복된 것은 강조용법인데 이를 무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였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이 반복되어 번거로운 느낌이 든다 할 수 있으나 아버지가 강조됨으로 기도문의 정신이 더 뚜렷해진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는 사동형인데 사동주(아버지)와 피사동체 (아버지의 이름)가 동일 존재이기 때문에 어색해 보이나, 이를 수동태로 번역할 경우 즉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여 지게 하시며’는 헬라어 어법상으로는 오류가 없으나 ‘거룩하여지게’는 우리의 입에 익혀져 있지 않은 부자연스러움이 있다. 따라서 음절수를 줄여 ‘거룩해지게’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번역 원칙③에 의거 원문에 충실하되 기도문이므로 현대 문어체로 정중한 표현을 찾아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께서 우리를 통하여 거룩하게 하소서라는 의미가 함축되었음을 각주로 넣고 짧은 기도문에 더 힘있는 표현으로 전환규칙(transformation rule) 능동의‘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로 번역한다.1)

③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는 ‘나라이 임하옵시고’ 보다 현대어법에 맞는 번역이다. 여기서 ‘오게 하시며'는 바로 앞의 구절의 동사 ‘거룩하게 하시며’와 다음 구절에 있는 동사 ‘이루어지게 하소서’가 수동태인데 반해 이것만은 능동태로서 그것을 이루는 주체가 아버지의 나라 자체인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3인칭 능동태 명령형인 ελθ?τω를 ‘나라가 오소서’(Let thy Kingdom come)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기도문 초두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도 대상으로 불러놓고 그에 대하여 기원하는 내용이므로 하나님(아버지)을 동작의 주체로 하여 사동형(使動形)으로 표현하여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가 된다.

④‘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는 동사를 두 번 번역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헬라어 원문에서 동사가 한 번 나타나고 또 뜻으로도 두 번 번역할 필요가 없는 이상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 하는 것은 과잉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번역한다.

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에서 σ?μερον은 하루(24시간) 를 뜻하는데 우리말의 ‘오늘날’과는 다르다. 오늘이라는 우리말은 하루라는 뜻도 있지만 오늘날 (오늘의 시대)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매일 매 일의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셨으므로 오늘이라 번역한다. 빵인데 별식이 아닌 주식을 구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고로 한다. 여기서 주시옵고는 지나치게 예스러운 표현이므로 좀 더 대중적인 표현을 써서 주시고로 한다.

⑥‘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는 순서가 바뀌어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죄 용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다른 사람을 용 서한다고 할 수 있어야 논리적으로 맞는 것같이 보이나 실은 이 기도를 드 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미 죄 용서를 받은 이들로 남의 죄를 용서하고 다시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드리는 기도다. 용서와 사해주시는 것 사이에 의미상 차이가 있으나 넓은 의미에서 용서라고 번역한다. ?ΟΦειλ?ται?와 ?ΟΦειλ?ματα는 빚진자(debtors)와 빚(debts)을 말하나 여기서는 죄 지은 자와 죄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빚진자 즉 잘못한 사람과 하나님께 대한 빚 즉 죄를 말한 것이다.

⑦‘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시험 대신 유혹이라는 단어로 번역할 수 있으나 좀더 넓은 의미를 가진 시험을 쓰되 ‘빠지지 않게 하시고’로 하면 시험의 성격이 분명해지므로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로 번역한다. 그리고 악에서 구 하소서는 πονηρο?가 남성(J.Weiss)인지 중성(Harnack)인지 학자들 따라 이견이 있다. 중성이라면 악한 것 즉 ‘악에서 건져 주소서’라는 기도가 되고 남성이라면 ‘악한 자에게서 건져주소서’라는 기도가 된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로 끝나지 않고 ‘악에서 구하소서’즉 두 동사에 ‘우리’가 다 목적격이 되므로 우리를로 하였고 시험과 악이 연결되어 있어 넓은 의미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한다.

앞에 나온 것과의 차이나 대조를 나타내는데 쓰이는 반의적 접속사로 그러나의 뜻이 있는데 또한 이라는 뜻도 있다. 시험(유혹)과 악은 동질적인 것으 로서 전반부에서는 부정적으로 후반부에서는 긍정적으로 서술한 것뿐이다. 따라서 운율상 번역을 생략한다.

⑧‘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에서 지금까지 쓰던 ‘대개’를 생략했다. 이것은 헬라어로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왜냐하면 … 때문이다.’(becasuse, for, since)의 뜻이 있다. 이것을 직역하면 문장이 길어져 리듬이 깨지고 그렇다고 대개라고 하면 대강 말해서인지 큰 원칙을 말하는 것인지 의미상 분명치 않으므로 이 단어는 번역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권세보다는 권능이 더 적합한 단 어로 판단하고, 영원히 당신의(σου)것 입니다는 송영이므로 앞의 기원이나 간구와 같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라고 정중히 번역을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영원히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면 주기도문의 아름다운 운율이 마지막에서 깨질 수 있어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으로 끝난다.

⑨ 연결형 어미「-고」와 「-며」는 시간적인 계기성과 동시성을 나타내는 데는 그 의미 기능이 서로 다르다. 예컨대 ‘밥을 먹고 공부를 했다’에서는 두 동작 사이에 시간적 전후 관계가 나타나는 계기성이 있고, ‘밥을 먹으며 공부를 했다’에서는 두 동작이 동시에 일어나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 고」와 「-며」는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을 나열하는 경우 양자에는 큰 차이가 없다. 비가 오고(며) 바람이 불고(며) 천둥이 친다. 다만 「-고」쓰임이 「-며」보다 일반적일 뿐이다. 흔히 국어 표현에서 동일한 어미가 반복적으로 쓰이는 단조성을 깨뜨리기 위해 「-고」와 「-며」를 섞어 쓰기도 한다. 즉 ‘비가오고, 바람이 불며’라고 한다. 주기도문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형태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앞의 단락과 뒤의 단락에 표현의 변별을 두고 있다. 즉 앞부분은 콤마로 통일했고 뒷부분은 κα?로 되어 있어 번역상 「-며 -며」「-고 -고」로 통일한다.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나라가 오게 하시며, 양식을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로 번역한다.

사도신경 새 번역에 대한 해설

사도신경은 성경에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신조화한 것으로 그 중요성이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가 없을 것이다. 십계명을 계명 중의 계명이라 하고, 주기도를 기도 중의 기도라 한다면, 사도신경은 많은 신조 가운데서 으뜸가는 신조 즉 신조 중의 신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도신조로 번역될 수 있으나 난하주로 설명을 하고, 성경과 거의 같 은 수준의 신조이므로 ‘사도신경’이라 한다. 사도신경은 기도문이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문이다.

①‘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문법상 고백자 즉 주어가 앞에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 믿습니다의 구조를 갖도록 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이라 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천지창조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되기 쉽다. 오히려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이심을 부각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보다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다. ‘전능하심’과 ‘아버지’가 나란히 균형을 이루며 하나님을 수식해야 하기 때문이고 또한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면 삼위 중 성부를 지칭하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우리와의 관계에서 아버지로 부르는 의미가 더 크다. 사도신경은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차례로 고백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먼저 고백하는 것이다.

②‘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위하여 Credo(나는 믿습니다.)라는 말이 다시 나오지 않으므로 앞의 문장과 함께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할 경우 그 다음 문장인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 의 ‘이’가 아버지 하나님인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을 고백하는 첫 문장을 일단 ‘믿습니다’로 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은 ‘또한(그리고) … 믿습니다’보다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같이 ‘나는 ~ 믿습니다’로 번역한다.

그리고 현행 사도신경의 ‘그 외아들’은‘그의 외아들’로 하는 것이 더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사용된 것은 지시대명사가 아니라 제3인칭 소유격 이기 때문이다. ‘외아들’(또는 독생자)은 숫자상 하나밖에 없다는 뜻보다 그리스도의 독특하신(유일하신) 신분관계를 나타낸 어휘다. 아버지 하나님과 유일하고 독특한 관계에 계신 분임을 말하려 한 것이다.

③‘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이는’이라 할 경우 ‘이 사람’또는 ‘이 사실’등의 뜻도 있음으로 ‘그는’이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을 확실히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라고 할 수 있으나 ‘말미암아’를 넣어 긴 고백문을 만들지 않고도 뜻이 확실하므로 ‘성령으로 잉태되어’라고 한다. 현행 사도신경에서 하고 있는 대로 ‘잉태하사’라고 할 경우 예수께서 성령으로 임신하셨다는 말이 되므로 ‘잉태되어’라고 해야 한다. ‘동정녀’를 ‘숫처녀’라고 번역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표현의 품위와 내용으로 보아 ‘동정녀’가 더 바람직 하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로 해서는 안 된다.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로 번역한다. ‘나시고’는 ‘에게’와 합치면 ‘태어난다’가 아니라‘(아기를)낳는다’는 뜻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사용해 온 대로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로 할 경우 ‘예수께서 성령으로 임신하셔서 처녀 마리아에게 애를 낳아 주셨다’는 너무나 잘못된 표현이 된다.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 나셨고…’라는 우리말 표현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우리말의 특징 중 역사적 현재라는 용법이 있어, 과거의 사건이나 상태를 현실성 있고 생생하게 표현할 때에 현재형 을 쓰는 경우가 많다. 사도신경의 원문과 영어 번역문에서 과거형을 쓰고 있으나, 신앙고백으로서의 표현의 유연성과 자연스러움을 고려하여 현재형으로 쓴다. 과거형이 계속될 경우 마지막 부분만 과거로 하고 앞의 것은 현재로 해도 과거로 인정된다. 따라서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며’로 번역한다.

또한 ‘잉태되시어’,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되신 지’에서 굳이 존대어법을 쓰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말에서는 시제를 같이 하는 몇 개의 동사가 순차적으로 겹칠 때에는 그 마지막 낱말에 과거시제를 나타내면 그 앞의 모든 시제에도 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잉태되어’, ‘고난을 받아’,‘장사된 지’로 번역한다.

④‘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는 빌라도의 사형판결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뜻으로 ‘고난을 받으시고’로 번역한다. 빌라도에 의해서 직접 육체적인 고난을 당했다는 뜻은 아니다.

⑤‘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장사된 지’는 ‘잉태하사’를 ‘잉태되어’로 번역한 것처럼 ‘장사된 지’로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서 주어는 계속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甄?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가’라는 말은 AD 200년의 이레니우스 본문으로부터 12개의 본문 중 서방신조의 최종 본문인 750년의 공인된 원문(Forma Recepta)을 포함한 3개의 원문에만 들어있고 나머지 9개의 원문에는 빠져있다. 사도신경은 처음부터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내용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있는 고백의 항목과 기본개념에 몇 가지 항목 또는 수식어가 부가됨으로 발전된 것이다.

가령, 처음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이었으나 그후 7세기에 ‘천지를 만드신’이라는 말이 첨가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첨가와는 달리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가’라는 말은 오히려 생략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교단간의 신학적 해석이 다르고 논쟁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 단락은 교회연합을 위하여 새 번역에서는 현행대로 생략키로 하되 난하주로 설명을 하기로 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로 번역할 수 있다. 사람을 자(者)로 쓴 것이다. ‘자’는 의존명사나 접미사로 쓰이는 것으로, 단독으로 쓸 수 있는 자립성이 없다. 약간의 비하시키는 느낌이 있으나 접미사로 쓸 경우 비속감이 없다. 예컨대 과학자, 신학자, 참석자가 그것이다. 따라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러 오십니다’할 경우 짧은 고백문이 너무 길게 되면 운율이 깨지고 사람이 크게 강조되는 느낌이 있어 죽은 자, 살아있는 자로 번역한다.

⑥‘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원문에 있는 ‘아버지’가 번역되어 들어갔다.

⑦‘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현행 ‘저리로서’를 현대어‘거기로부터’로 번역한다. ‘심판하러 오십니다’는 확실한 미래를 말할 경우 현재형을 쓰고 있는 용법을 적용한 것이다.

⑧ ‘나는 성령을 믿으며,’

라틴어와 헬라어 사도신경의 구조는 삼위 하나님 중심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을 대문자로 쓰고 성부 와 성자는 Et(κα?)로 연결시키니 주 동사가 둘로 되어 있다. 그리고 진지하게 신앙을 고백할 경우 ?뺐 ??쓰는 것보다 절대격(또는 배제격)인 「나는 ~ 믿으며」로 번역하여 더 강한 뜻을 나타낸다.

성령이 오셔서 거룩한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그 교회는 그 구성원인 성도를 가르치고 지킨다. 따라서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처럼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번역하여 삼위 하나님을 확실히 고백할 수 있으나 그 다음 문장에 Credo가 없고 모두 콤마로 계속되다가 마지막에 Et가 나오므로 ‘나는 성령을 믿으며’,‘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사함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으로 번역한다. 여기서 거룩한 공교회는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 universal church)를 말한다.

‘성도의 교제와’는 코이노니아 즉 교제, 사귐, 친교, 참여와 같은 여러 가지 뜻 중 '교제'라는 말이 고어인 '교통'보다는 이해가 쉬 울 것으로 판단하여 '교제와'로 번역한다.

죄를 용서 받는 것과는 성도에 관한 항목이다. 죄 사함에 대한 항목은 하나 님께서 죄를 사해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항목은 첫째 항목 이다. 여기서는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는다는 뜻이므로 그 다음에 계속되는, 성도의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과 같이 성도에게 관련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하나님이)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보다는 (우리가) 죄를 용서 받는 것을 믿는 것으로 해야 한다.

몸의 부활과는 원문대로 '다시 사는 것'보다 '부활'로 번역한다.

영생을 믿습니다는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를 번역한 것이다. '영생'은 끝없는 시간(endless), 무 시간(timeless)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영생으로 한다.

새 번역에 참여한 신학자 명단

이종윤 이수영 나채운 이형기 홍사만(예장통합) 정훈택(예장합동) 김완태 배종수(기성) 박근원 홍순원 김창락 최 영(기장) 유승훈 박종천(기감) 조재태 최덕성(고신) 나용화 이순태(예장 개혁) 김필수 이보탁(구세군) 김기석(성공회) 한천설(예장개혁-성내동) 예용범 정용철(합동보수A) 한성기 이정현(대신) 김영일 최창남 박찬웅(복음) 이영훈 문한배(예성) 이영훈 강영만 박문옥 차준희(기하성) 김영재 조병수(합신) 임승안 박두환(나사렛) 한창영 최희용(개혁국제) 김창기 손선영(예감) 최덕신(예장고려) 이진희(예장성장) 엄진섭 김선회(루터회) 김광옥 이성환(기감연합) 김탁기(그리스도교) 박성기 김규승(예장브니엘) 이준원 김병근(예장합동총신) 김진규 김준범(예장고려개혁) 김준철 박재순 정해선(KNCC) 박천일 임채문(한기총) 민영진(성서공회) -62명(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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